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2권
33. 늙은 너구리
정호 병실에 정장차림을 한 낯선 30대 초반 녀성이 들어섰다.
“인사과장!”’
“예-“
“시간 없는데 아무나 들여보내지 마오.”
“예. 그분은 꼭 봐야 될 분인 거 같아서 들여보냈습니다.”
정호는 그제야 알은 체하며 그 녀성을 쳐다보았다.
그 녀자는 꽤나 엄숙한 표정으로 침대 옆에 다가왔다.
“최국장이시죠?”
“예, 아니, 순시원인데. 누구신죠?”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검찰원에서 왔습니다.”
“검찰원?”
정호는 벌떡 일어나 쏘파에 자리를 권했다.
“네. 최혜영 국장께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병원 앞에 법경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서 준비하십시오.”
“아니, 전화하면 되는 건데. 모처럼 찾아까지 왔습니까?”
금방까지도 굽신거리던 정호, 저게 뭔가?
“아이고, 대가리 아파라.”
정호는 머리를 싸안고 때굴때굴 구을면서 양병을 부렸다.
초인종을 누르자 간호원이 황급히 들어왔다.
“어데 불편한가요?”
“아이고, 머리 터지는 거 같소.”
간호원은 대화기로 황선희 주임의사를 불렀다.
황선희가 부랴부랴 달려들어왔다.
“어디 아픈가요?”
황선희는 정호 가까이 다가가 기미 박힌 이마를 짚어본다, 우멍눈 눈까풀을 뒤번지고 동공을 들여다본다 하면서 야단쳤다.
“좀 나가 있으세요. 환자 정서와 치료에 영향주면 안돼요.”
그러자 그 녀검사는 잠시 복도에 나가 기다렸다.
황선희는 간호원을 돌아보았다.
“저도 나가오.”
“예-“
황선희는 정호와 단둘이 남자 나직이 말했다.
“일본관광수속 됐어요.”
“그래?”
정호는 언제 땔땔 구을던 사람이냐 싶이 고개를 번쩍 들고 만면춘풍이 됐다.
"감사하오.”
황의사는 목소리를 더 낮췄다.
“나와 함께 일본에나 놀러 갑시다. 이제 비행기표만 끊으면 돼요.”
“감사하오. 전번에 준 진짜 신분증으로 수속했소?”
“네.”
“가짜 신분증으로 다시 수속해 주오.”
“네? 무슨 소린가요? 자유관광 얼마나 수속 힘든지 아는가요? 도꾜의과대학 다닐 때 박사도사를 통해 겨우 수속한 건데요.”
정호는 호주머니에서 돈가방을 꺼내더니 가짜신분증을 꺼내 황선희한테 건넸다.
“자, 함께 가겠으면 내 말 들으라니깐. 비행기표는 동시에 상해, 북경 공항을 출발공항으로 떼오.”
“두개 공항?”
“양, 시키는대로 하오. 그래요 저 검사들을 따돌리지.”
“알았습니다. 소식을 기다리십시오. 쳇, 내 남편도 이렇게 해주지 못했는데.”
“감사하오.”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땔땔 구을면서 야단쳤다.
“아이고, 대가리야! 살려달라!”
정호는 문께를 힐끔 돌아보며 교활한 웃음을 입귀로 흘렸다.
“날 살려주오. 황의사, 뇌출혈이 왔다고 하오. 최혜영, 그 저승사자 생각만 해도 몸서리칠 지경이야.”
정호는 또다시 머리를 붙안고 침대 위에서 대굴대굴 구을며 숨 넘어가는 소리를 쳤다.
“아이고, 대가리야, 날 살려라!”
그때 녀검사와 남검사가 문을 뚝 떼고 쌩 바람이 일게 들어왔다.
황선희는 정호 여기저기를 여겨보더니 녀검사를 돌아보았다.
“오늘 아침까지 괜찮았는데 웬 일이지? 손님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이 지경입니까? 환자를 절대 자극을 심하게 줘선 안 됩니다.”
녀검사는 어이없어했다.
“검찰원에서 왔는데요. 반탐오부패국 최혜영 국장의 호출령을 전달했을뿐입니다. 그런데 불시에 대굴대굴 구을면서 머리 아프다고 했습니다. 참, 알고도 모를 기괴한 일입니다.”
황선희는 대개 짐작이 가 정호한테 눈길을 돌렸다.
정호는 손으로 머리를 마구 부둥켜안고 땔땔 구을다가 슬며서 황선희를 곁눈질하더니 눈을 찔끔해보였다.
황선희는 제꺽 눈치챘다. 그는 필경 새파란 나이 때부터 사귀여온 오랜 애인인지라 직권을 빌어 정호를 엄호해나섰다.
“환자 정서는 건강치료에 아주 중요해요. 먼저 정서 온정된 담 호출해도 되지 않을가요?”
남검사는 정호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호령했다.
“흥! 장마당에서 흥정하듯 흥정하겠는가?”
녀검사도 을러멨다.
“펀펀해가지고 꾀병을 부리겠는가? 어서 검찰원에 갑시다!”
(어쩐담? 최혜영 국장, 그 저승사자한테 가면 가차없이 염라전에 갈 건데. 으흐흑, 흑흑.)
그때 황선희 또 나섰다.
“이 환자는 급성뇌막염에 걸린 거 같아요. 우리 병원에선 치료할 수 없습니다. 아마 북경이나 상해 큰 병원에 보내야 될 거 같아요.”
녀검사는 정색하며 황선희를 보고 엄숙하게 말했다.
“뭐라고? 안돼. 먼저 심문받고 치료하러 가야 됩니다.”
“이 환자 무슨 죽을 죄라도 범했습니까? 뇌막염에 걸려 제 정신이 아닌 환자를 치료도 하지 않고 어떻게 심문합니까?”
녀검사는 고집을 부렸다.
“양병을 하는 걸 모르는 거 같습니까?”
남검사가 불호령했다.
“일어낫!”
정호는 머리를 붙안고 때굴때굴 구을며 죽는 상을 했다.
“아이고, 대가리야, 대가리 다 빠개져!”
남녀검사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두 검사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쑤군거렸다.
“저걸 어쩌오? 최국장은 기다리겠는데.”
“제 정신 아닌 환자야 어떻게 심문하겠어요?”
“그래도 최국장한테 청시하고 결정하기오.”
남검사가 복도 한쪽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한참 후 녀자검사가 다가와 황박사한테 말했다.
“별수 없군요. 호출을 잠시 미루겠습니다. 치료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황박사는 능청을 떨었다.
“먼저 관찰해봅시다. 아마 한 보름 걸릴 거 같아요.”
“네- 알았습니다.”
녀검사는 남검사를 돌아보았다.
남검사도 다가왔다.
“먼저 치료하십시오. 돌아가기오.”
검사들이 사라지자 늙은 너구리는 그물에서 잠시 빠져나왔다. 그리하여 연극을 그만 놀았다.
“황박사, 감사하오.”
정호는 침대머리 궤에서 빨간 봉투를 두개 꺼내 주었다.
“자, 채포될 위험이 있을 때 구해줘서 감사하오. 황박사 아니였으면 하마트면 저승사자한테 잡혀 갈 번했소. ㅋㅋㅋ.”
황박사는 정호 우멍눈을 들여다보며 지껄여댔다.
“국장 나부랭이질 했기에 좋긴 좋구만. 앓아도 숱한 돈을 넙쩍넙쩍 받아먹는게. ㅎㅎㅎ,”
정호는 우멍눈에 귀찮은듯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좋긴 뭐 좋아? 남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해 못 살겠는데.”
“오- 그래, 머리 빠개지는 거 같잖소? ㅋㅋ, 어쩜 아직도 숱한 미녀들을 거느리고 풍류남아로 향수할 수 있소? 얼마나 좋겠소? 항상 폭신폭신한 미녀들 배 위에서 개발헤염을 치는게.”
“무슨 말이오?”
“저기 복도를 보오. 숱한 미녀들이 줄을 서지 않았는가요? 범은 늙어도 범의 가죽은 아직도 위엄이 이만저만 아니구만요.”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진짜 귀찮소.”
정호는 정색해 물었다.
“황박사, 어떤 사람들은 너무 색을 밝히면 오래 살지 못한다던데 의학적으로 맞소?”
황박사는 침대옆 쏘파에 앉으면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뭐나 적당해야죠. 안 그러면 단명이죠. 옛날 황제들이 왜 대부분 단명인지 압니까? 모두 주색을 너무 밝혔기에 일찍이 죽었죠. 황제는 낮에는 나라를 다스리는데다가 누가 자기를 노리는가고 속을 태우고 밤에는 날마다 황후 외에도 숱한 황비와 궁녀들을 다스리느라고 신장이 다 잘못됐죠. 그래서 단명이였죠.”
정호는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내 무슨 황제요?”
“최국장은 황제 못잖게 미녀 많잖은가요? 자꾸 너무 주색을 밝히면 신장이 못쓰게 돼 진짜 오래 못 삽니다.”
“난 아직도 단번에 처녀 몇을 데리고 놀 수 있단 말이오. 무슨 놈의 의학과학이 그러오? 매일 그래도 몸이 나빠진 거 모르겠는데. 흥!”
“쓸데 없이 녀자 숫자만 채우지 말고 하나라도 진짜 마음 속으로 따르고 사랑하는 녀자를 골라 친해두란 말이오. 아무리 졸혼했다고 마구 놀지 말란 말이오.”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짜 이젠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귀찮소. 하나하나 떼버려야지.”
“잘 했어요.”
정호는 정색해 물었다.
“일부 성지식책에서는 너무 참고 섹스를 하지 않아도 건강에 좋지 않다던데. 의학적으로 맞소?”
황박사는 제대로 알려주었다.
“맞아요. 너무 참아도 진짜 음양조화가 잘 되지 않아 건강을 해치게 되죠. 또 부단히 성자극을 받아야 엔돌핀도 생기고 음양조화도 잘 돼 건강에 좋지요. 남자나 녀자나 성고조에 올라 극도로 흥분돼 하늘에 붕 뜨는 감이 들 때 온 몸의 세포가 흥분돼 전에 없이 활약하고 인슐린과 엔돌핀이 분비되면서 면역력도 증강되죠. 그래서 퍽 젊어지기도 하죠.”
“오- 그럼 내 숱한 미녀들을 바꿔가면서 하는 것도 건강엔 좋구만. ㅎㅎㅎ.”
"그렇긴 해요. 성생활을 억제하면 대뇌 성신경이 압축되고 호르몬과 인슐린, 엔돌핀 등이 잘 분비되지 않죠. 그래서 남자나 녀자나 자꾸 억제하면 나중에 면역력이 저하되면서 건강이 나빠지죠. 남자는 음위가 오게 되고 녀자는 자궁이나 질에 병이 오게 되고 로화가 빨리 되죠. 심지어 남자는 전립선염이나 고환염이 오게 되죠."
"금욕주의자 문걸이 세상 병이란 병 다 앓는 거 이제야 원인 알 거 같소. 미녀로봇에 대고 그러니 온전하겠소? 장염에 장암에까지 걸리잖았어. 코로나는 더 말할 것두 없구. 흥!"
"춘희 그 남친 말이죠?"
"그래. 녀성과 그러지 원인도 있겠지?"
"그런 거 같아요. 녀자들은 오랫동안 참으면 자궁암이나 유방암도 오죠. 유방도 남자들의 손이 자주 가야 혈액순환도 잘 되고 점점 풍만해지죠. 그런데 장시간 매만지지도 않으면 유방암이 오기 쉬워요. 우리 언니랑 참 불쌍하죠. 서른살에 중풍을 맞은 남편과 한뉘 생과부로 살았죠. 그래서 팍팍 늙습니다. 숱한 지병에 오래 살 거 같잖습니다. "
"그래 지금 황선생님 잘 계시오? 본지도 오래오. 찾아가 봐야 하는데."
"칠순인데 팔순로파처럼 됐어요."
"참 안됐구만. 내 자주 찾아가 봐야는데. 에이, 참."
"변강쇠야 언제 우리 언니를 다 배려할 수 있겠어? 숱한 미녀들을 다루느라고. ㅋㅋ."
정호는 정색했다.
"황선생님이 지금 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지금도 난 황선생님이 날 가르쳐준 인생도리 잊어지지 않소."
황선희 박사는 호기심에 차 물었다.
"뭐라고 했는가요?"
"'무용예술을 하고 전도를 개척하려면 자기를 희생할줄 알아야 한다.' 얼마나 철리 있는 인생철학이오. 난 황선생님의 말씀을 명기하고 무용예술과 전도를 위해 내 마음과 육체, 재물을 아끼지 않았지. 그래서 문화국 국장이라도 주어 했지. 난 내 제자들한테도 항상 황선생님의 말씀을 외웠소."
"언니 한마디 가르침 덕에 숱한 재물을 긁어모으고 숱한 미녀들을 데리고 놀았겠군요. ㅎㅎㅎ."
"무슨 소리? 언제 황선생님을 찾아가 위로해줘야지."
"우리 언니 병신 나그네하구 생과부로 살면서 글쎄 항상 스스로 자위를 하다나니 뭔가요? 성의식이 다 잘못 됏어요. 젊은 나이에 성생활이 원만하지 못해 즐거 파파 로파로 됐잖아요. 비극이죠."
"황박사는?"
"그만 해. 난 스스로 섹스비법이 있어. 괜찮아."
"하긴 섹스박사 아니오. 그래도 종종 변강쇠를 찾아오오. ㅎㅎㅎ."
황선희는 퉁방울 같은 봉이 쌍까풀 눈을 흘겼다.
"짐승 같은 놈."
뒤이어 그녀는 인차 정색했다.
“남은 생각해 말하는데도. 흥! 최국장 나이엔 너무 과도하게 해도 건강을 해칩니다. 신장이 망가지면 단명하게 됩니다.”
최정호는 진짜 성의학강의를 하듯 하는 황선희를 보고 지껄였다.
“황박사처럼 50대 초반 나이엔 남자들을 싫어한다던데. 정말이오? 황박사는 어떻소?”
“내야 성갈증이 날 지경이죠. 전번에도 말했지만 나그네 그게 병신 같아서 성불만족이죠.”
정호는 때를 만났다고 지껄였다.
“그럼 날 자주 찾아올게지. 참. 나쁜 국장이라고 그리 랭담하오?”
황선희 박사는 헤쭉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국장이야 수컷으로는 상등수캐지. 변강쇠 그게 어떻게 돼 그렇게 아가씨들을 끄는지, 아직도 그렇게 센지, 좀 연구해보고파. ㅎㅎㅎ. 급성뇌막염에 걸린 주제에 작작 날 건드려.”
황선희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정호는 제꺽 알아들었다.
(그래, 난 급성뇌막염환자야. ㅋㅋ. 검찰원에 잡혀가면 끝장이야. 병원에 누워 있으면 숱한 빨간 봉투나 받지. 흥.)
이튿날 정호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차, 깜짝 잊을 번했구나. 오늘 5월 26일 아닌가.)
그는 백사불구하고 순정이네 음악다방 개업식에 가기로 했다.
그는 침대머리 궤에 쌓인 숱한 빨간 봉투를 꺼내 가방에 걷어넣었다.
(병원에 뒀다가 누구 좋은 일 하자고?)
그는 미리 준비한 물품을 다 챙기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개업식에 가자고 동원했다.
“하영이오? 우리 집에서 음악다방을 차렸는데. 오늘 개업식에 꼭 오오. 양, 9시 전에 오오. 꾀꼴새처럼 노래 부르오. 양, 아니, 평양 아가씨처럼 노래를 좀 선물하오.”
정호는 이번엔 정희한테 전화했다.
"사랑하는 이, 우리 집 개업식에 오오. 아홉시 전에 꼭 오오."
그러자 정희가 게두두벌거렸다.
“아니, 그리 일찌기 가서 뭐 하는가요?”
“개업식을 세상 멋지게 하자고 그러오. 꼭 시간을 지키오.”
누가 감히 늙은 너구리 부르는데 가지 않겠는가. 비위를 거슬렸다간 진짜 언제 어디로 날아가 처박힐지 모를 판이 아닌가.
늙은 너구리는 개업식을 빌어 또 숱한 부조금을 받아 순정한테 주려고 들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한다고 아무리 배신감을 받은 순정도 잘 해주면 날 선처할 거야.)
음악다방 개업식에는 문화국의 김국장 외에도 공상국 오청룡 국장과 리굉팔 총경리, 공안국 박동묵 국장, 심계국 조국장을 비롯한 숱한 국장들과 총경리, 그리고 문화국 산하 인기 연예인들과 미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두터운 부조금봉투를 축의금상자에 쑤셔넣었다. 그들은 모두 최정호 국장의 이런저런 신세를 진 사람들이였다. 아직도 최정호라는 뿌리 깊고 가지 많고 커다란 나무 그늘 밑을 벗어나서는 살기 힘든 정객들과 경제유지인사, 문예귀족들과 배우, 가수, 무용수, 미녀들이였다.
순정은 입이 함박만해 어쩔줄 몰라했다. 그러나 주인공인 최정호 국장의 모습은 시종 보이지 않았다.
미국에 갔던 미녀군단 미녀들도 대부분 왔다. 저쪽에 황선희와 춘희도 보이고 문걸도 지예와 함께 보였다.
“우릴 오라고 전화 해놓고 어째 최국장은 보이지조 않지?”
“글쎄 말이야.”
“잘 못 오지 않았는가?”
하영은 한쪽 구석에 가서 핸드폰을 쳤다.
“어째 안 오십니까?”
“내 진작 왔어.”
“어디 계신가요?”
“어디 있나 찾아봐라.”
하영은 정호 전화 한통에 가무단 예술부 부장 겸 부단장으로 제발됐다. 그녀는 입이 함박만해질 지경이 돼 정호를 찾아헤맸다,
정희는 아니꼬운 눈길로 하영을 흘겨보았다.
(간나새끼, 뭐? 부장에 부단장 됐다구 개턱처럼 쳐들고. 흥. 뭐 장차 단장될 후비간부로 됐다구? 흥!)
뺑덕이에미도 허병칠한테서 5만원 받아먹었는지라 잠시 허부장을 놔주고 하영을 더 어쩌지는 않았다. 그녀는 지금 정호의 보마차에 뒀던 그 금은보화만 욕심날 뿐이였다. 하여 정호가 언제 나타나겠는가고 살피고 있었다.
하늘에는 이상하게 드론 둘이나 떠돌아다녔다. 개업식을 비디오촬영하자고? 아니면?
이때 순정이 마이크를 잡더니 청아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개업식에 찾아온 여러분, 감사합니다. 먼저 뻐스에 오르십시오.”
음악다방 앞 광장에는 숱한 버스가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정희는 뻐스에 오르면서 제 좋은 소리를 했다.
“아마 식당에 가는가 보지.”
하영이 도리머리질 했다.
“열시도 안됐는데 벌써?”
불여우 같은 정희는 뒤에서는 검찰원에 가서 최국장을 고발해놓고 하영과 허병칠한테서 돈을 짜내면서도 앞에서는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면서 정호한테 아첨하는 척했다. 오늘도 그녀는 오기 싫은 것도 아직 정호한테서 보마차에 뒀던 금음보화를 얻어가지려고 왔던 것이다.
그녀들은 뻐스에 오르면서 저쪽 오디차 옆에서 탈을 쓰고 걸레질을 하는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를 발견했다.
웬 보스네 운전수 같았는데 몸집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딱 최국장 같았다.
정희는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한쪽구석으로 가서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늙은 너구리 나타났습니다. 예. 오디차를 몰고 왔습디다. 예. 새로운 정황이 있으면 인차 알리겠습니다."
나영이 먼저 정호를 알아보고 사위를 흘끔거리면서 다가갔다.
하늘에서 드론이 나영의 뒤를 따라 오디차 상공으로 멀찍이 배회했다.
“최국장님, 왔어요?”
늙은 너구리는 짐짓 능청을 떨었다.
“누굴 찾소? 난 최국장 모르오.”
“거짓말. 탈 벗으세요. 최국장 아닌가?”
그제야 정호는 나영을 오디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목소리 낮춰.”
“왜 탈까지 쓰고 연극 놀아요?”
“이젠 공식 장소에서 탈 쓰고 남의 눈을 피해 살 신세 됐어.”
나영은 급한 일부터 꺼냈다.
“최국장님, 큰 일 났습니다. 요즘 심계국에서 찾아와 우리 단위 재무장부를 활딱 번집니다.”
늙은 너구리는 암암리에 하영을 고발해놓고 앞에서는 능청을 떨었다.
“뭐라오? 큰 일 났구만.”
“어쩜 좋아요? 최국장, 살려주십시오. 네?”
나영은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
늙은 너구리는 속으로 깨고소해했다.
(이젠 날 따라 다니지 않고 배기겠느냐? ㅎㅎㅎ.)
늙은 너구리는 나영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아닌 보살을 떨었다.
“별수 없군. 이젠 여기서 살기 곤난하오. 어서 피신해야겠소.”
“그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남편과 애는 어쩌고?”
늙은 너구리는 녀포로를 손아귀에 꽉 틀어쥐였다.
“남편과 애를 붙들고 있다가 감옥에 가겠소? 아니면 피신하겠소? 이젠 결단 내릴 때 된 거 같소.”
“어마나. 내 팔자야. 애랑 어쩌고 피신합니까? 피신하면 어디로 피신합니까? 도처에 법망을 쳐놓았겠는데요.”
늙은 너구리는 나영을 슬쩍 데리고 오디차에 올라탔다. 그 오디차는 순정의 자가용이였다.
오디차는 버스 행렬을 뒤로 하고 망아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하늘에서 드론이 오디차 꼬리를 물고 뒤따라 날아갔다. 최혜영 국장이 검사들을 시켜 날린 수사드론이였다.
정호는 그런줄도 모르고 오디차를 쏜살같이 몰았다. 드디여 울울창창한 수림 속에 별장 하나 나타났다.
“어딘가요?”
“우리 나영을 별장에 모시려고. ㅎㅎㅎ.”
정호는 원격조종기로 별장 대문을 열고 오디를 몰고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다.
“여긴 어딘가요?”
“누구도 모르는 비밀별장이오. 잠시 여기 피신해있소.”
사실 정호는 정희네 명도다방에 얹혀 살자니 힘들었다. 뺑덕이에미가 어찌나 보마차에 뒀던 금은보화와 돈을 달라고 졸라대는지 하루도 더 배기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일한 비밀피신처 -별장으로 옮겨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별장 몸채로 올라갔다. 으리으리한 별장은 황홀한 별유천지였다. 정호는 이제껏 아무도 데리고 이 별장에 온 적이 없었다.
“어떠오?”
정호는 열쇠를 꺼내 맡겼다.
“비밀번호는 내 생일로 돼 있소. 알만 하지?”
“네. 해마다 쵝국장 생일에 축수드리러 갔는데 잊을 수 있겠는가요?”
정호는 나영을 쏘파에 물러앉히면서 정색했다.
“이젠 핸드폰도 쓰지 마오. 핸드폰부터 추적하면 여기 있는 위치도 다 드러날게 아니오?”
나영은 머리를 끄뎍였다.
“이걸 쓰오.”
정호는 가방에서 핸드폰 두개를 꺼냈다.
“이건 신분증도 필요없이 산 거요. 딱 우리 둘이 단선련계할 핸드폰이오.”
나영은 핸드빽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럼 이건 버릴가요?”
“아니오. 이제 관건적일 때 쓸 일이 있소. 여기서 까딱 아무데도 나가지 말고 숨어 있소. 먹을 거랑 근심하지 마오.”
정호는 가방을 열어보였다.
“옛소. 잘 보관하오. 내 일 보고 밤에 돌아올게. 오늘부터 우린 여기 피신해 살기오.”
“네- 고맙습니다.”
정호는 나영의 손을 잡고 뒤방에 놓인 커다란 랭장고를 열어보였다.
“아니!”
나영은 너누 황홀한 금빛에 눈이 실 지경이였다.
랭장고 안에는 금은보화가 황금빛을 빛뿌리고 있었다.
“이건 몽땅 나영 거요.”
나영은 정호의 믿음과 관심에 못내 감동됐다. 냉장고 아래서랍을 여니 딸라따발 일여덟개나 쌓여 있었다. 피뜩 봐도 몇십만 딸라 될 거 같아보였다.
“아무것도 근심하지 말라. 나만 따르면 뭐나 다 있을 거야.”
나영은 털이 부시시한 품에 와락 안겨 눈물이 글썽해 종알거렸다.
“고맙습니다. 랑군님. 이젠 최국장님을 애인 아닌 랑군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정호는 나영을 꽉 끌어안고 보슴털이 보송보송난 이마에 키스를 살짝 해줬다. 그는 나긋나긋한 나영을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넣은 것에 못내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한편 버스행렬은 개업식에 참가한 백여명 손님들을 싣고 망아산 중턱에까지 달려올라갔다.
단풍나무숲이 우거진 수림 속에 별장 같은 집채가 드러났다.
자그마한 호수가에 물레방아도 하얀 물을 맞아 빙빙 돌아갔다.
손님들은 눈 앞에 나타난 정경에 놀랐다. 글쎄 오고보니 숱한 로인들이 오고 가는 경로복지원이 아니겠는가!
순정이 자비를 베풀어 본가집 부모와 정호가 남긴 돈과 금은보화로 차린 경로복지원이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순정이 보마차에서 내려 사뿐사뿐 경로복지원 마당 앞에 림시로 꾸린 자그마한 무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다음과 같이 페부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여러분, 보귀한 시간 내서 여기까지 찾아주셔셔 감사합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이 자란 자식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로인을 존경하며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조선민족의 훌륭한 전통이며 미풍량속입니다. 저는 이젠 보모도 계시지 않고 저의 신변에는 자식 하나 없습니다. 저는 이젠 졸혼하고 저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저는 여생에 음악다방과 경로복지원을 잘 차려 의지가지 없는 빈곤한 로인들을 자기 부모처럼 살뜰히 모시고 의지가지 없는 고아들을 친자식들처럼 보살피면서 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순정은 울먹거리면서 겨우 뒷말을 이었다.
"오늘 여러분들의 축의금으로 이 세상에서 의지가지 없이 살고 있는 경로복지원의 수십명 로인들과 고아들한테 복지의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비로운 지성에 감사합니다.”
직원들로 보이는 젊은 녀성들이 차에서 옷견지며 식료품이며를 넣은 숱한 상자를 날라다 경로복지원 문 앞에 쌓아놓았다. 경로복지원 로인들과 고아들은 기쁜 나머지 싱글벙글 웃으며 어쩔줄 몰라했다.
순정은 마이크를 잡고 무대 아래를 둘러보다가 뒷말을 이었다.
“이 경로복지원은 문화국 최정호 국장님께서 아글타글 벌어서 아껴 먹고 쓰면서 남긴 돈을 투자해 차린 것입니다. 이밖에 상해에 있는 저의 5촌 외조카 군철 부장이 해마다 달마다 3만원씩 고아워원에 보내 온 돈도 경로복지원에 투자했습니다. 오늘 비록 최정호 국장님과 군철 부장께서 이 자리에 오시지 못했지만 저는 경로복지원의 로인들과 고아들을 대표해 최국장님과 군철 외조카의 복지정신에 깊은 사의를 드립니다. 최정호 국장님은 앓는 몸으로 병원 구급실에 입원해 계시면서도 다음과 같은 축하의 말씀을 보내왔습니다.”
순정은 정호가 온 것을 뻔히 알면서 핸드빽에서 축사를 꺼내 대독했다.
그때 하영이 무대에 뛰여올라갔다.
하영은 금방울 은방울 굴리는듯한 청아한 목소리로 축사를 읽었다.
경로복지원에 드리는 축사
저는 비록 앓는 몸으로서 오늘 개업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순정 리사장의 효심에 받들려 일떠선 경로복지원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부모에게 효성하지 않는 자식이 어찌 사회와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의지가지 없이 사는 불쌍한 독거로인들과 부모를 잃고 홀로 이 세상에 남아 의지가지 없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사람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저는 몸이 불편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약자를 돕는 착한 마음으로 박순정 리사장을 도와 이 세상에서 의지가지 없이 사는 불쌍한 로인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자그마한 힘과 정성을 보태주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덕을 쌓은 사람을 용서하고 약자를 꼭 도와줄 것입니다.
하느님이여, 집도 없이 홀로난 불쌍한 로인들과 고아들에게 집을 내려주시고 먹거리를 내주시는 박순정 리사장을 잘 굽어살피시고 굳이 도와주옵소서.
저는 더 많은 녀성들에게 자유와 해방, 복을 마련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경로복지원 탄생일에 변강쇠 최정호 하나님께 비나이다. 아직도 가정의 속박에서 해방받지 못해 자유와 복을 잃은 녀성들, 그리고 의지가지 없는 불쌍한 로인들과 고아들에게 복음을 내려주실 것을 두 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축사가 끝나자 장내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방미미녀군단의 아가씨들은 눈물까지 글썽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특히 “많은 녀성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해방, 복을 마련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합니다.”는 말에 감동을 먹었다.
순정은 필경 정호와 함께 30년을 살아온 조강지처였다. 하여 정호를 미워도 했지만 체포해가지 못하게 암암리에 엄호하고 있었다. 그녀도 자기 속셈이 있었다.
(그래야 정호가 보마차에 뒀던 금은보화까지 찾아다가 복지원에 쓰지. ㅋㅋㅋ.)
정호는 정은 아가씨들한테 주고 재물은 조강지처 순정한테 남겨 주었다. 나무 잎도 떨어지면 뿌리에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한편 정호는 자기 하나만 30년 동안 해바라기처럼 쳐다보며 따르며 사랑하고 살아온 순정을 배신한 것이 량심적으로 미안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나마 잘해 주고 있었다.
정호는 순정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오디차 안에서 중얼거렸다.
(순정아, 숱한 녀자 데리고 놀아 그렇지. 난 그리 마음 나쁜 사람 아니야. 난 착한 면이 있어. 나도 자선사업과 복지사업에 나서서 약체를 도우면서 덕을 쌓으며 살고 싶다. 그러나 아가씨들을 많이 거느리다보니 돈잎이 딸려 마음과 같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
순정은 정호의 그런 마음이 와닿는지 계속 연극을 놀아갔다.
“우리는 이 자리까지 오신 여러분의 지지를 받아 착한 복지사업을 해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재삼 감사합니다.”
박수소리가 우뢰처럼 울려퍼졌다.
순정은 숱한 선물을 복지원 원장과 로인 대표, 그리고 고아 대표한테 드렸다. 복지원 직원들이 산더미 같은 선물상자를 복지원에 들여갔다.
순간 탈을 쓰고 먼 발치 오디차 옆에서 구경하던 정호 마음도 흐뭇해났다. 그는 이제까지 다욕하고 주색에 빠져 살다가 어쩌다가 한번 쯤은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기실 이것도 늙은 너구리가 순정과 짜고 들어 사회에서 선량한 형상을 부각하려고 꾸민 연극이였다.
(저승사자년도 선량한 간부, 청렴한 간부를 체포한다는 부담을 가질게 아닌가. 흐흐흐.)
그러나 정희는 두덜거렸다.
“진짜 양 대가리를 걸고 개고기를 파는 판이구나.”
하영이 맞장구를 치며 게두두벌거렸다.
“글쎄 말이오. 오늘 음악다방 개업식을 한다고 해놓고 효성경로복지원을 구경시켜?”
“쳇, 진짜 다욕한 보스야. 우리 돈을 가져다 제 면목내잖아?”
“돈을 빨아내는덴 이골이 튼 년놈들이야. 흥!”
그때 정호는 탈을 쓴 채 오디차를 몰고 경로복지원에 다가왔다.
그는 오디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순정한테 전화해 개업식을 일일이 막후조종했다.
“사회자를 시켜 림하영 가수를 노래를 시키오…”
순정은 핸드폰을 끄고 무대에서 내려 사회자한테 다가가 뭐라고 분부했다. 원래 사회는 해설원 출신인 나영을 시키기로 됐는데 녀아나운서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갔다.
“아래에 가무단 부단장이며 유명가수인 림하영씨가 로인들에게 노래를 선물하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합시다.”
하영은 벌써 헬기를 타고 성악조 조장으로부터 일약 부단장으로 임명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영은 허병칠 부장을 잠시 놔주었다. 정희도 잠시 대학교로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미녀군단은 정호와 순정이 미리 짜놓은 순서대로 무대에 몰라 공연하기 시작하였다.
평양 아가씨 같은 하영이 무대에 올라가 청아한 목소리로 로인들이 즐겨듣는 노래를 몇곡 간드러지게 불렀다.
뒤이어 한복을 곱게 입은 방미 미녀군단이 무대에 올라가 “아리랑” 곡에 맞춰 너울너울 학처럼 신나게 춤 추었다.
경로복지원의 로인들은 주름살을 활짝 펴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다음 공연순서를 공포하였다.
“아래에 바레 ‘호수가 백조와 독수리 련가”를 특별초청한 저명한 바레리나들께서 공연해드리겠습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백조 탈을 쓴 하얀 백조(순정이)가 모둠발로 바레를 추며 무대 중간으로 미끌어지듯 나왔다. 비록 오색령롱한 조명은 없었지만 유명한 바레리나의 바레라는 것을 한눈으로 보아낼 수 있었다.
갑자기 별장 지붕으로부터 새까만 독수리(정호)가 갈고리로 쇠바줄을 타고 미끌어져 내려왔다. 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면서 무대에 날아내려왔다. 주둥이 뾰족한 독수리 탈을 쓰고 까만 독수리 복을 입은 독수리는 백조를 끌어안고 커다란 날개를 펴면서 쌍쌍이 나래치는 조형을 한다. 흑백이 조화된 독수리와 백조는 음악리듬을 타고 경쾌하게 멋진 쌍무를 췄다. 백조는 독수리 무릎을 딛고 훌 어깨에 날아올라가 외발로 서서 살짝살짝 옮겨딛이며 날개를 파닥이면서 멋진 바레를 추었다. 미국에서 영희와 추던 바레를 이번 무대에 성공적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영희가 독수리 머리에 올라서서 바레를 추던 것과 섹스시늉을 하던 조형은 그만 두었다. 백조가 독수리 탈을 밟아 번대머리가 드러날가봐 겁난 것도 아니였다. 섹스시늉은 국내에서는 너무 한 것 같았기 때문에 절제했던 것이다.
무대 아래에서는 처음 이렇게 정채로운 수준급바레를 보고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호는 무용으로 이어진 사제간의 정성을 다해 로인들에게 프로급바레를 선물했던 것이다. 올가미를 목에 건 정호는 어찌 보면 이번 바레가 무용예술가로서는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었다.
그는 바레를 마치자 눈물이 글썽해 순정을 꽉 포옹했다. 순정은 새까만 독수리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먹였다.
정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랭정한 그는 리지적으로 독수리 대가리 탈을 벗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녀저승사자 눈에 띠면 큰 경을 칠라.)
순정 리사장 부부간은 로인들과 고아들을 한순간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무대에서 내렸다. 모두들 축하인사를 보내려고 모여들자 독수리는 무대 뒤로 어디론가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모두들 버스와 자가용을 타고 음악다방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연회장에는 벌써 진수성찬 술상 열몇상이나 은은한 음악 속에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걸과 춘희, 황선희, 성호, 종호, 범송이랑 한 술상에 앉았다.
범송은 여기저기 살피더니 이상해 중얼거렸다.
“어째 정호 보이지 않는다.”
성호가 툴툴거렸다.
“기다리지도 말라. 의리도 없는 놈새끼. 흥!”
종호랑 문걸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친구들은 모두 정호가 문걸의 처를 30년 동안이나 간통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고 격분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문걸이 속상해할가 봐 더 말하지 않았다.
음악다방 연회대청 벽에는 문걸이 증송한 숱한 벽화들이 걸려 있었다.
춘희는 소나무와 미인송이 꽉 끌어안은 선남선녀 벽화를 보고 문걸에게 눈짓했다. 문걸은 희죽이 웃었다.
벽에는 또미인이 물동이를 어깨 넘어 물을 부으면서 목욕하는 라체벽화도 있었다. 그 벽화는 정희를 라체모델로 그린 벽화였다.
그림을 그릴 때 정희는 고의로 물동이를 어떻게 들고 물을 붓는 조형을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문걸이 가까이 다가가 물동이를 어깨 넘어 들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다. 그때 정희는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며 추파를 던지면서 문걸을 유혹했다. 그리하여 끝내 문걸을 섹스까지 하는 실수까지 저지르게 유인했던 것이다.
정희는 탈을 쓰고 한상에 앉은 문걸을 흘끔 흘겨보았다.
나영을 모델로 그린 벽화도 손님들의 눈길을 끌었다. 나영은 쏘파에 모로 누워 턱을 고이고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들은 독수리 탈을 쓴 바레리나가 정호인줄도 모르고 술상에서도 바레를 수준급으로 잘 췄다고 혀를 끌끌 찼다.
(나영이 오지 않기를 잘했지. 괜히 봉변당하겠다.)
문걸은 얼굴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고 예술적으로 다른 미녀 얼굴을 살짝 바꿔 그려놓았다. 하지만 정희는 창피해 얼굴이 다 빨개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연회가 끝나자 음악다방에서 자유로운 사교무판이 펼쳐졌다.
하영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숱한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서정적인 서양노래를 영어에 조선어로 은은하게 불렀다.
문걸은 춘희와 함께 은은한 노래소리에 맞춰 왈쯔를 슬슬 추며 음악다방 대청 중심으로 미끌어져나갔다.
그때 탈을 쓴 독수리와 백조도 음악에 맞춰 사교무를 추며 음악대청 중심으로 미글어져 나왔다. 그들은 안고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다가도 척 멈춰섰다. 백조는 독수리에게 안겨 뒤로 몸을 뒤번지며 아름다운 조형을 이루며 또 뱅글뱅글 돌아갔다.
오색령롱한 불빛아래 미녀군단 미녀들도 춤판에 끼여들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소용돌이 속에 휘감겨들었다.
정희와 하영 등 미녀들은 종호랑 범송이랑 성호랑한테 다가와 춤을 청했다. 성호랑 미녀들을 끌어안고 문걸과 춘희랑 따라 성수나게 빙글빙글 돌아갔다.
가무단 미녀들이 경쾌하고 절주 빠른 음악에 맞춰 현대댄스를 췄다. 음악다방의 춤판은 황홀한 절정을 이루었다.
갑자기 오색령롱한 샨데리아 조명이 꺼지고 네온등이 대낮처럼 환히 켜졌다.
“오락판 정지!”
두리모자들이 뛰여들었다.
순정이 하얀 백조 탈을 벗으면서 경찰들한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경찰은 종이장을 쳐들어보였다.
“체포장입니다.”
“뭐라고? 남의 개업식에 와서 누굴 체포한단 말입니까?”
“탐오수뢰죄로 최정호를 체포합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네? 개업식에 진짜 재수없이 논다.”
그때 독수리는 늙은 너구리처럼 허리를 굽히며 슬금슬금 뒤로 빠져 화장실 쪽으로 비실비실 물러갔다.
“최정호 어디 있습니까?”
“네? 최정호 국장? 왜? 그는 우리 경로복지원의 특등공신입니다.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그렇게 착한 간부를 다 체포하다니? 흥!”
경찰 우두머리가 경고했다.
“박보스는 모든 언행에 법적책임을 져야 합니다. 최국장 어데 갔습니까?”
순정은 입에 빗장을 질렀다.
“꼼짝 말엇!”
화장실 쪽에서 들리는 고함소리.
순정은 어깨를 축 늘여뜨렸다.
경찰들이 그리로 우르르 뛰여갔다.
“늙은 너구리 같은 놈,”
“어디로 도망쳐?”
경장이 독수리 탈을 훌 벗겼다. 박대가리 같은 번대머리가 훌 드러났다.
“독수리 탈을 쓰면 네놈을 모를 거 같애?”
경장이 정호 손목에 차디찬 쇠고랑이를 절컥 채우면서 랭소했다.
정호는 독수리 탈을 훌 벗으면서 헤벌쭉 허구프게 웃었다.
“무슨 짓인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왜 체포해?”
그는 연회대청에 대고 고함쳤다.
“박국장! 뭐 해?”
박동묵 국장은 희죽이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오면서 두팔을 벌려보였다.
“낸들 어쩌는 수 있소? 검찰원에서 보낸 법경들인데..,”
정호는 고래고래 고함쳤다.
“체포해도 쓸데 없어! 며칠 안 되면 또 내놔야 해!”
“가자!”
늙은 너구리 같은 정호는 겉으로는 대수롭잖게 여기는 척하며 경찰들을 따라 음악다방을 나갔다. 기실 속은 얼음덩이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문걸과 성호 등은 놀랍고도 깨고소해해하는 복잡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서라!"
갑자기 문걸이 새까만 독수리복을 입은 정호한테 덮쳐갔다.
문걸은 정호한테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도 사람새끼야? 개 같은 놈!"
"뭐 하는 짓인가?!"
경찰들이 문걸을 마구 뜯어말렸다.
"왜 이럽니까?"
"저놈과 물어보시오. 처제를 어쨌는가?"
문걸의 눈에는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정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쇠고랑이를 찬 두 손을 들어 문걸한테 손사래를 쳤다. 그는 번대머리를 툭 떨어뜨리며 경찰한테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바깥에는 경찰차가 줄느런히 서서 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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